Marie-Louise von Franz
Falktales: 융심리학의 그림자
융심리학의 그림자 개념
1. 그림자 개념의 소개와 연구 방향
이 책의 제1부에서는 주인공의 그림자가 구체적인 특정 인물로 표현된 민담을 살펴볼 것이다. 자료를 다루기에 앞서 ‘그림자’라는 개념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지 먼저 분명히 해야 할 것이다. 제2부에서는 구비전승에 나타난 악의 양상과 그림자와 악이 서로 어떻게 결합되어 있는지를 더 자세히 살펴볼 것이다.
2. 융의 그림자 정의와 재해석
융심리학의 그림자 개념은 일반적으로 무의식적 인격의 특정한 면이 구체적 형태를 띤 것으로 정의된다. 이 인격 측면은 자아-콤플렉스와 다시 연결될 수 있지만, 개인마다 각기 다른 이유로 자아-콤플렉스에서 분리되어 있다. 따라서 우리는 그림자를 자아-콤플렉스의 어두운, 실현되지 못한, 혹은 억압된 측면이라고 규정할 수 있다.
하지만 이 정의는 부분적으로만 맞다. 융은 제자들이 심리학 개념들을 맹목적으로 받아들이고 체계화하거나, 깊이 있게 이해하지 못한 채 인용하는 것을 못마땅하게 여겼다. 그는 한번 이 주제에 관한 토론에 끼어들어 이렇게 말했다.
“지금 우리가 말한 것들은 모두 의미가 없소! 그림자란 단순히 무의식 전체를 뜻하는 것이오.” 그는 이어서 사람들이 이러한 심리학적 현상들이 어떻게 발견되었으며, 어떻게 개개인에 의해 경험되는지를 종종 잊어버린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각 개인이 처한 구체적 상황을 놓치지 않는 것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3. 무의식과 그림자의 단계적 발현
무의식에 접근하는 첫 단계에서 그림자는 내가 모르는 마음속에서 일어나고 있으며, 나의 직접적인 의식이 놓쳐버린 모든 것을 일컫는 ‘신화적’ 명칭이다. 사람이 이 수수께끼 같은 인격 영역을 탐색하기 시작하고 그 여러 측면들을 탐구할 때, 비로소 그림자는 꿈속에서 꿈꾼 사람과 같은 성性의 인물로 인격화되어 나타난다.
이어서 자신의 미지의 영역으로 더 깊이 들어가면, 그곳에 또 다른 정신 영역이 숨어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이것은 융이 여성에게서는 아니무스Animus, 남성에게서는 아니마Anima라고 이름 붙인 영역이다.
이 개념들은 비교적 자율적인 감정, 기분, 그리고 이념들로 구성된 구조를 설명한다. 이것들이 인간의 형태로 꿈에 나타날 때는 꿈꾼 사람과 반대되는 성을 지니게 된다. 그 다음으로 우리는 자기의 인격화와 같은 것들을 지각하게 된다. 이는 내적인 전체성의 화신으로서, 지금까지의 영역을 초월하는 초자연적 특성을 나타내는 일종의 심적 신상心的 神像이다.
융은 단순화를 위해 무의식을 더 이상 구분하지 않는 것이 좋다고 보았다. 그러나 그는 이를 넘어서는 또 다른 내면적 인격화들의 존재를 자주 암시했다.
4. 개인적 그림자의 형성과 통합
무의식과의 첫 만남에서 그림자는 개인적인 것과 집단적인 것이 혼합된 형태로 나타나 어느 한쪽으로 분류할 수 없다.
예를 들어 서로 매우 다른 성격의 부모로부터, 이른바 ‘화학적으로’ 맞지 않는 유전적 소인을 물려받은 사례를 보자. 내가 치료했던 한 여성은 아버지로부터 쉽게 화내고 잔인한 기질을, 어머니로부터는 극도로 민감한 감수성을 물려받았다. 그녀는 이처럼 상반된 두 성질을 어떻게 동시에 지닐 수 있을까?
누군가 그녀를 자극했을 때, 그녀는 두 가지 상반된 반응 사이에서 갈등했다. 많은 아이들이 이처럼 서로 맞지 않는 성질들을 지니고 있지만, 성장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어떤 측면은 강화되고 다른 측면은 약화된다. 이 과정에는 교육과 관습이 영향을 미친다.
같은 성질과 태도가 계속 장려되면 그것이 ‘제2의 천성’이 되고, 이와 반대되는 성향은 숨겨지게 된다. 그림자는 바로 이런 억제된 성질들, 즉 사회가 선호하는 측면과 맞지 않아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고 의식에 수용되지 못한 성질들로부터 형성된다. 우리가 알지 못하고 의식적으로 받아들이려 하지 않은 인격의 측면들이 의식에서 분리되어 독자적인 제2의 인격이 되는 것, 이것이 일반적인 법칙이다.
내면의 심적 과정을 예감하는 능력, 꿈과 환상, 그리고 이와 유사한 자료들을 통해 이러한 요소들의 존재를 인식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이것이 바로 ‘그림자의 의식화’ 과정이다. 많은 경우 분석은 여기서 멈춘다. 사람들은 자신의 그림자와 마주하게 되더라도, 이를 어떻게 표현하고 일상생활에 통합해야 할지 알지 못한다. 더욱 어려운 점은 가까운 사람들이 당사자의 변화를 꺼린다는 것이다.
이는 한 사람의 변화가 주변 사람들에게도 발전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오랫동안 억압해온 성격의 특성을 받아들이는 데는 큰 용기가 필요하다. 우리는 거부했던 부분이 무의식 속에서 계속 활동하고 있음을 알고 있다. 그림자를 인식하고 수용하는 것이 첫 번째 과제라면, 두 번째는 이를 표현하고 의식적으로 살아내기로 결심하는 것이다.
이 지점에서 진정한 윤리적 문제가 대두된다. 부정적 영향을 피하기 위해서는 세심한 주의와 깊은 성찰이 필요하다. 분석의 첫 단계에서 그림자는 무의식 전체, 즉 기분과 감정, 비합리적 의견들이 의식 속으로 침투하는 현상이다.
내 여자친구의 사례를 들어보면, 그녀는 미분화된 사고(사고가 그녀의 열등기능이었기에), 여과되지 않은 원초적 감정(그림자에 속하는), 그리고 파괴적인 의견들(아니무스가 만들어낸)의 폭발에 휩쓸렸다. 여성에게서 나타나는 이러한 정서적 반응을 자세히 관찰하면, 우리는 (여성적) 그림자의 작용과 (남성적) 아니무스의 판단 작용을 구분할 수 있다. 우리는 꿈에서 개인적 차원을 넘어선 요소들을 발견하게 된다.
이를 통해 그림자가 개인적 요소와 비개인적인 집단적 요소로 구성됨을 알 수 있다. 만약 우리가 완전히 고립되어 산다면 자신의 그림자를 인식하기는 사실상 불가능할 것이다. 우리가 타인에게 어떻게 보이는지 알려줄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우리에게는 타자가 필요하다. 따라서 외부 관찰자들의 반응을 통해 우리 문명의 그림자적 측면을 이해할 수 있다.
5. 집단적 그림자와 그 영향
어떤 특성들은 혼자 있거나 작은 집단에 있을 때는 두드러지지 않다가, 큰 집단 속에 들어가면 강한 영향력을 발휘하게 된다. 이러한 보상적 현상은 특히 내향적인 사람들에게서 잘 관찰된다. 이들은 평소에는 뒷전에 머물기를 선호하지만, 사회적 상황에서는 오히려 주목받기를 원한다.
내향형은 혼자 있을 때 자신을 명예욕이 없고, 성공에 무관심하며, 술책을 쓰지 않고 진정한 자아로 살고자 하는 사람이라고 여긴다. 하지만 그림자를 제대로 통합하지 못한 내향형은 집단 속에서 명예욕에 불타는 외향형의 영향을 곧바로 받게 된다. 반면 자신의 사회적 인정 욕구를 잘 알고 있는 외향형은 이러한 욕구에 맹목적으로 휩쓸리지 않는다.
특정 인물이 오직 집단 속에서만 명예욕의 유혹을 느낀다면, 이는 분명 집단적 그림자가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혼자 있을 때는 평온하다가도 ‘마귀가 날뛰는’ 집단에 들어가면 혼란에 빠지는 것이다. 전쟁 전 많은 독일인들이 이를 경험했고, 나 역시 독일인 환자들을 통해 이를 확인했다. 그들은 나치 집회에서 돌아온 후에는 나치에 대해 적대적이었지만, 집회 중에는 – 한 환자의 표현에 따르면 – “마귀에 사로잡혔다.” 이는 개인적이라기보다 집단적 그림자에 사로잡힌 것이었다.
이 집단적 그림자는 종교 체계 안에서 오늘날에도 마귀와 사악한 영들의 형상으로 구체화되고 있다. 중세 시대의 사람들은 그런 집회에서 돌아와 이렇게 말했을 것이다. “마귀가 나를 사로잡았었는데, 이제야 그 속박에서 벗어났다”라고. 사탄은 전형적인 집단적 그림자가 인격화된 모습이다. 그러나 주목해야 할 점은, 우리가 집단적 악마에 사로잡히는 것은 오직 우리 마음속에 그와 동일한 요소가 있을 때뿐이라는 사실이다. 그렇지 않다면 마귀는 아무런 영향력도 발휘할 수 없다.
이때 우리의 정신은 그러한 영향을 받아들일 만한 감각기관을 갖고 있지 않다. 우리의 개인적 그림자들이 충분히 통합되지 못한 상태에서 하나의 틈새를 만들어내면, 집단적 그림자가 그 틈을 통해 스며들 수 있다. 그림자가 지닌 이 두 가지 측면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는 윤리적 문제일 뿐만 아니라 실제적인 문제이기 때문이다.
만약 우리가 집단이나 인류의 집단적 그림자의 존재를 고려하지 않는다면, 개인에게 지나치게 무거운 책임을 지우게 될 것이다. 여기서 집단적 그림자와 악의 문제가 서로 만나게 된다. 후자는 이 책의 제2부에서 다룰 것이다.
6. 결론: 그림자 인식의 균형
자기의 그림자를 인식하지 않는 것은 불건강하다. 하지만 그림자로 인해 과도한 부담을 짊어지는 것 역시 똑같이 불건강하다. 이는 생명의 에너지를 막아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양심의 가책은 우리가 더 많은 그림자를 받아들여야 함을 의미한다. 이러한 평형을 찾는 일은 매우 어렵고 미묘한 과제다. 지금까지 우리는 민담을 살펴보기에 앞서 필요한 몇 가지를 고찰했다. 민담에는 그림자나 악을 구체적으로 표현하는 형상들이 등장한다. 이는 개인적 환상이나 꿈에서 비롯된 인격화가 아닌, 집단적 심상의 인격화와 관련되어 있기 때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