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rl Gustav Jung

Carl Jung 칼융의 외향적 사고

1. 외향적 사고(Te)의 특징

1. 외향적 사고의 기본 특성

외향적 태도는 사고를 객체와 객관적 자료에 집중시켜 특별한 성격을 부여한다. 사고 과정에서는 주관적이고 무의식적인 요소들과 감각을 통해 받아들이는 객관적 자료들이 함께 작용하는데, 외향적 사고는 전자보다 후자를 더 중시한다.
 
모든 판단에는 기준이 전제되는데, 외향적 판단에서는 객관적 조건에서 도출된 기준이 타당성과 결정력을 가진다. 이러한 기준은 객관적 감각기관으로 감지할 수 있는 사실이나 객관적 이념 모두에서 비롯될 수 있다. 객관적 이념은 주관적으로 받아들여지더라도 외부에서 비롯된 것이기에 여전히 외향적 성격을 유지한다.
 
따라서 외향적 사고는 구체적 사실뿐 아니라 이념적 형태도 취할 수 있다. 다만, 그 이념들이 외부—즉, 전통이나 교육을 통해 전해진 것—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이 확인될 때만 외향적 사고라 할 수 있다.
 

2. 외향적 사고의 판단 기준

외향적 사고를 판단하는 기준에는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사고의 기준이 외부에서 전달되는지 아니면 주체에서 나오는지이며,
 
둘째는 사고의 방향이 주로 외부를 향하는지의 여부이다.
 
그러나 단순히 구체적 대상들에 몰두하는 것만으로는 사고가 외향적이라고 할 수 없다. 우리는 구체적 대상을 생각할 때 그것으로부터 사고를 추상화하거나 구체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사고가 구체적인 것들에 집중한다고 해서 외향적이라 할 수는 있지만, 그 사고가 객관적 사실이나 기존의 일반 개념으로 이어질지는 여전히 불분명하다.
 
상인, 기술자, 자연과학자의 실제적 사고에서는 객체 지향적 방향이 뚜렷하게 나타난다. 반면 철학자의 사고가 이념을 향할 때는 판단이 더 복잡해진다. 이때는 두 가지를 검토해야 한다.
 
첫째, 해당 이념들이 단순히 객체 경험에서 추상된 것으로서 객관적 사실들을 포괄하는 상위 개념인지 여부이다.
 
둘째, 이념들이 직접적 경험에서 추상된 것이 아니라면, 전통이나 주변인들의 사고로부터 전달받은 것인지 여부이다. 이러한 검토 결과가 긍정적이면, 해당 이념들은 객관적 조건에 속하며, 따라서 그러한 사고는 외향적이라 할 수 있다.
 

3. 내향적 사고와의 비교

내향적 사고의 본질은 뒤에서 제시하기로 했지만, 여기서 몇 가지를 짚고 넘어가야겠다. 독자들은 방금 설명한 외향적 사고를 듣고서 이것이 사고의 전부라고 쉽게 결론 내릴 수 있다. “객관적 사실이나 보편적 이념을 겨냥하지 않는 것을 어떻게 ‘사고’라 할 수 있는가?”라는 의문이 들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 시대와 그 대표자들은 외향적 사고만을 인정하고 있다. 이는 세상에 드러나는 모든 사고가—과학과 철학, 또는 예술의 형태로—직접 객체에서 비롯되거나 보편적 관념으로 향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유로 사고는 항상 명확하지는 않더라도 본질적으로 이해 가능하며, 비교적 타당한 것으로 여겨진다. 즉,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은 외향적 사고, 곧 객관적 조건에 맞추어진 사고뿐이다. 그러나 이와는 전혀 다른 종류의 사고가 존재하는데, 바로 내향적 사고이다.
 
내향적 사고는 직접적인 객관적 경험이나 일반적으로 전달되는 객관적 이념들을 지향하지 않는다. 내가 내향적 사고를 발견한 과정은 다음과 같다. 내가 구체적 대상이나 일반적 개념을 생각할 때, 사고의 방향이 결국 나의 대상들로 되돌아온다면, 이는 그 순간 내면에서 일어나는 유일한 심리적 과정이 아니다.
 
나는 모든 감각과 감정의 방해 요소를 배제하더라도, 객관적 조건에서 시작해 객관적 결론으로 나아가려는 사고조차 끊임없이 주체와 관계를 맺는다는 점을 강조하고자 한다. 이는 필수불가결한 관계다. 주체와의 연결 없이는 어떠한 사고도 지속될 수 없기 때문이다. 내 사고가 객관적 사실에 최대한 충실하려 해도, 그것은 결국 나의 사고 과정이므로 주관성은 피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반드시 필요하다. 사고의 흐름을 아무리 객관적 방향으로 이끌려 해도, 이와 병행하는 주관적 과정과 그 참여를 차단하면 사고는 중단될 수밖에 없다.
 
이러한 주관적 평행과정은 자연스러우며, 어느 정도까지만 피할 수 있다. 이는 객관적 소여를 주체화하는—즉, 주체에 동화시키는—경향이다. 주관적 과정이 우세해지면 외향형과 대립되는 다른 종류의 사고가 나타나는데, 이는 주체와 주관적으로 주어진 것에 맞추는 방향을 가지며 나는 이를 내향적이라 부른다.
 
이러한 사고는 객관적 사실이나 객관적으로 주어진 것을 향하지 않고, 주관적으로 주어진 것에서 출발하여 주관적 이념이나 사실들로 향한다. 여기서는 이 사고를 자세히 다루지 않되, 그 존재를 확인함으로써 외향적 사고의 대척점을 보여주어 외향적 사고의 본질을 명확히 하고자 한다.
 
외향적 사고는 객관적 방향 설정이 우세해질 때 나타난다. 이는 사고의 논리 자체를 변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제임스가 언급한 사상가들의 기질 차이를 만들어낼 뿐이다. 객체에 방향을 맞추더라도 사고 기능의 본질은 그대로 유지되며, 단지 사고의 현상적 측면만이 달라진다.
 

4. 외향적 사고의 한계와 특징

객관적으로 주어진 것을 향하기에, 이 사고는 마치 객체에 사로잡힌 듯하며 외적 방향 설정 없이는 존재할 수 없는 것처럼 보인다. 이는 외적 사실들을 좇거나 보편타당한 이념에 도달해야만 완성되는 듯하다. 이 사고는 항상 객관적으로 주어진 것에서 출발하며, 객관적 요소의 동의가 있어야만 결론을 내릴 수 있는 것처럼 보인다. 따라서 이 사고는 객관적 경계 안에서는 매우 기민하게 작동하지만, 부자연스럽고 때로는 근시안적인 인상을 준다.
 
여기서 내가 서술하는 것은 외향적 사고의 현상이 관찰자에게 주는 인상일 뿐이다. 관찰자는 다른 관점(제3자로서 밖에서 관찰하는 입장을 말함—역주)을 취할 수밖에 없다. 그렇지 않으면 외향적 사고의 현상을 전혀 관찰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처럼 관점이 다르기에 관찰자는 현상만을 보고 본질은 보지 못한다.
 
그러나 이 사고의 본질 속에 있는 사람은 본질은 파악하지만 현상은 보지 못한다. 현상만을 보고 판단하면 본질을 제대로 평가할 수 없어 그 가치를 과소평가하기 쉽다. 하지만 이 사고는 내향적 사고와 비교할 때 성과나 창조성이 결코 부족하지 않으며, 단지 추구하는 목표가 다를 뿐이다. 이러한 차이는 외향적 사고가 주관적으로 방향 지어진 사고의 특수한 대상과 재료를 받아들일 때 특히 두드러진다.
 
예를 들어, 이러한 현상은 주관적 확신이 객관적 사실이나 이념에서 도출된 결과로 분석적으로 설명될 때 드러난다. 자연과학적 관점에서 볼 때, 두 사고방식의 차이는 주체 지향적 사고가 객관적으로 주어진 것을 비객관적 관계 속에—즉, 주관적 이념에—종속시키려 할 때 가장 분명해진다.
 

5. 두 사고방식의 대립과 통합

양측은 서로의 영역을 침범당한다고 여기며, 이때 상호 간의 편견이 드러난다. 주체 지향적 사고는 무질서한 방종으로, 외향적 사고는 피상적인 도식화로 비춰진다. 이러한 대립이 지속되는 가운데, 주관적 대상과 객관적 대상을 완전히 분리하려는 시도가 있었으나 실패했다. 설령 그러한 분리가 가능하더라도 그것은 큰 손실이 될 것이다. 두 지향성은 모두 제한된 타당성을 지니고 있어 서로를 보완해야 하기 때문이다.
 

6. 외향적 사고의 문제점

객관적으로 주어진 것에 사고가 지나치게 종속되면 생명력을 잃게 된다. 이는 사고가 객관적 대상의 단순한 장식물로 전락하여 추상적 개념을 만들어내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 결과 사고는 단순한 모방에 그치며, 객관적 대상의 표면적 특징만을 반복하게 된다. 이러한 사고는 객관적 대상과 직접 연결되지만, 결코 그것을 초월하지 못해 경험을 객관적 이념으로 승화시키지 못한다. 반대로 이 사고가 객관적 이념을 다룰 때는 실제 개별 경험에 도달하지 못하고 동어반복에 빠진다. 유물론적 사고가 이러한 예를 잘 보여준다.
 
외향적 사고가 객체를 통해 결정되어 객관적으로 주어진 것에 종속되면, 한편으로는 개별 경험들이 사고 과정을 거치지 못한 채 단순히 축적된다. 이렇게 서로 연관성 없는 경험들이 쌓여 무게를 더해갈 때, 다른 한편에서는 심리적 보상을 요구하는 사고 해리 현상이 나타난다.
 
이러한 보상은 단순하면서도 보편적인 이념의 형태로 나타나는데, 이 이념은 축적되어 있으나 내적 연결이 없는 전체에 하나의 연관성을 부여하거나 최소한 그러한 연관성을 암시한다. ‘물질’이나 ‘에너지’ 같은 개념들이 바로 이러한 목적에 부합하는 이념들이다. 반면 사고가 외적 사실들을 무시한 채 관습적 관념에만 매달리면, 이러한 사고의 빈약함을 보상하려는 듯 사실들을 더욱 맹목적으로 수집하게 된다.
 
그러나 이렇게 수집된 사실들은 제한적이고 생명력 없는 단일한 관점으로만 해석되어, 사물의 더 깊은 가치와 의미는 자연스럽게 사라진다. 오늘날 과학적 문헌이 현기증이 날 정도로 축적되고 있는데, 안타깝게도 그 상당수가 이러한 잘못된 방향 설정에서 비롯되었다.
ESTJ/ENTJ 외향적 사고(외향 판단)

2. 외향적 사고형(E_TJ)

1. 외향적 사고형의 기본 특성

 경험이 보여주듯, 한 개체 내의 심리적 기본 기능들이 모두 동일한 강도와 발달 수준을 보이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일반적으로 어느 한 기능이 우세하게 발달하는데, 특히 사고 기능이 우위를 차지하고 개인이 주로 사고에 의해 행동하며 모든 중요한 행위가 이성적 동기에서 비롯되는 경우, 우리는 그 사람을 사고형이라 부른다.
 
이러한 사고형은 내향적 또는 외향적일 수 있는데, 여기서는 먼저 외향적 사고형을 살펴보고자 한다.
 
이 유형은 객관적으로 주어진 것—즉, 객관적 사실이나 보편타당한 관념—을 중심으로 하는 지적 추리를 통해 삶을 이해하고 표현하려 한다. 순수한 유형의 경우 오직 이것만을 추구한다. 이들은 객관적 사실과 지적 공식이 자신과 타인 모두에게 가장 강력한 힘을 지닌다고 믿으며, 이를 기준으로 선악과 미추를 판단한다.
 

2. 외향적 사고형의 공식과 원칙

 이들에게는 공식에 부합하는 것이 옳고, 대립하는 것은 그르며, 무관한 것은 우연에 불과하다. 이 공식이 세계의 의미를 대변한다고 믿기에, 이를 보편적 법칙으로 보고 모든 상황에서 실현하고자 한다. 자신이 이 공식을 따르듯 타인도 마땅히 그래야 한다고 여기며, 이를 따르지 않는 이들을 세계의 법칙에 저항하는 비이성적이고 비도덕적이며 비양심적인 존재로 간주한다. 외향적 사고형은 도덕적 관점에서 어떠한 예외도 인정하지 않는다.
 
이들은 자신들의 이상이 반드시 현실화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그들에게 이 이상은 객관적 현실의 가장 순수한 표현이며, 인류의 행복에 필수불가결한 보편타당한 진리이기 때문이다. 이는 박애정신이 아닌, 정의와 진리라는 더 높은 차원의 관점에서 비롯된다.
 
이들은 자신들의 공식과 대립하는 모든 것을 미완성된 것으로 보고, 기회가 있을 때마다 제거해야 할 일시적 실패로 간주한다. 제거할 수 없는 것은 병리적인 것으로 취급하며, 병들고 고통받는 이들을 위한 관용이 공식의 일부라면 구호소, 병원, 감옥, 식민지 등의 시설을 계획해야 한다고 본다. 이러한 계획들을 실제로 실현하기 위해서는 정의와 진리라는 동기만으로는 부족하고 진정한 이웃사랑이 필요한데, 이는 지적 공식보다는 감정과 관련이 있다.
 
외향적 사고형에게 ‘사람은 본래’ 또는 ‘사람은 마땅히’라는 말이 핵심적 역할을 한다. 이들의 공식이 충분히 포괄적이면 개혁자가 되어 대중의 양심을 일깨우고 중요한 개혁을 전파하는 등 사회적으로 매우 유용한 역할을 할 수 있다. 반면 공식이 협소하면 자신과 타인을 하나의 틀에 가두려 하는 불평꾼, 궤변가, 독선적 비판가가 된다. 이 유형의 대다수는 이 두 극단 사이에서 움직인다.
 
외향적 태도의 특성상, 인격의 작용과 표현은 외부로 멀리 퍼질수록 더욱 효과적으로 나타난다. 영향력이 미치는 주변부에서는 최상의 면모를 보이지만, 세력권 내부로 들어갈수록 그 강압적 성향의 부정적 결과가 드러난다. 주변부에서는 공식의 진리가 기존 가치에 더해진 유익한 요소로 받아들여져 다양한 삶이 번창하지만, 공식의 세력권 깊숙이 들어갈수록 공식에 부합하지 않는 모든 생명력은 사라진다. 가족들이 이러한 외향적 공식으로 인한 피해를 가장 크게 받으며, 궁극적으로는 주체 자신이 가장 심각한 고통을 겪게 된다.
 

3. 심리적 한계와 억압

이제 이 유형의 또 다른 심리학적 측면을 살펴보자. 삶과 그 무한한 가능성을 완벽히 포괄하고 표현할 수 있는 지적 공식은 과거에도, 미래에도 존재할 수 없다. 따라서 다른 중요한 생활 형태와 활동들은 불가피하게 억제되거나 배제된다. 이 유형에서 가장 먼저 억제되는 것은 감정에 기반한 생활 형태들이다. 예컨대 심미적 활동, 예술적 안목과 감각, 우정의 가꿈 등이다.
 
종교적 경험이나 열정과 같은 비합리적 형태들은 의식조차 되지 않을 만큼 완전히 배제된다. 이러한 생활 형태들이 매우 중요함에도 불구하고, 대부분 의식되지 않는다. 물론 삶 전체를 하나의 특정 공식에 헌신하는 예외적 인간도 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다른 모든 것을 배제하는 삶을 지속할 수 없다. 지적 태도로 억압된 생활 형태들은—외적 상황과 내적 성향에 따라—결국 간접적으로 표출되어 의식적 삶을 방해하게 된다. 이러한 방해가 심화되면 신경증으로 발전할 수 있다.
 
하지만 대개는 신경증까지 진행되지 않는다. 개인이 본능적으로 그 공식을—적절한 합리적 근거를 들어—예방적으로 완화하기 때문이다. 이는 일종의 숨 쉴 구멍을 만드는 것이다. 의식이 배제한 경향과 기능들은 의식되지 않거나 부분적으로만 의식되어 미성숙한 상태로 머문다. 이들은 의식의 기능에 비해 열등하다. 의식되지 않을 경우, 이러한 경향과 기능들은 무의식의 다른 내용들과 뒤섞여 기괴한 성격을 띠게 된다. 비록 이차적 역할에 그치더라도, 이들이 의식될 때는 심리적 전체상에서 상당한 중요성을 지닌다.
 

5. 감정의 억압과 그 영향

의식이 가장 먼저 억압하는 것은 감정이다. 감정은 경직된 지적 공식과 가장 먼저 충돌하기에 쉽게 억압된다. 어떤 심리적 기능도 완전히 제거할 수는 없으며, 단지 크게 왜곡될 뿐이다. 감정은 통제되고 종속될 수 있는 범위 내에서만 의식의 지적 태도를 지지하고 그 의도에 적응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적응에는 한계가 있다. 감정의 일부는 계속해서 순종을 거부하므로 억압될 수밖에 없다. 억압이 성공하면 감정은 의식에서 사라지고, 의식의 문턱 아래에서 의식의 의도에 반하는 활동을 펼친다. 이는 때로 개인에게 완전한 수수께끼가 된다. 예컨대, 의식의 극단적 이타주의에 개인도 모르는 이기심이 스며들어, 순수하게 이타적이었던 행위가 이기적인 것으로 변질되는 것이다.
 
순수한 윤리적 의도로 시작했지만 전혀 다른 동기가 결정적으로 작용하는 상황이 발생한다. 다른 이를 구하려 했거나 도덕적 부패를 비판했던 사람들이 오히려 스스로 도움이 필요하거나 타락한 모습을 보이게 된다. 그들은 선한 의도로 시작하지만, 결국 피하려 했던 바로 그 상황을 초래하는 수단을 사용하고 만다. 외향적 이상주의자들 중에는 인류의 행복을 위해 자신들의 이상을 실현하고자 거짓말이나 부정직한 수단까지도 서슴지 않는 이들이 있다.
 
저명한 학자들은 자신들의 이론과 그 보편타당성을 지나치게 확신한 나머지, 이상에 맞추어 증거를 왜곡하는 부끄러운 사례들을 보여준다. 이는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하는 전형적인 예시다. 이처럼 학식 있는 사람들조차 미성숙한 감정이 무의식적으로 작용할 때 이러한 실수를 저지른다. 이 유형에서 감정의 미성숙함은 또 다른 방식으로도 나타난다. 객관적 이론이 지배하면서 의식이 비인격화되어 개인적 삶이 심각한 피해를 입는 것이다.
 

6. 무의식적 반작용

의식이 극단으로 치닫게 되면, 모든 개인적 배려와 자기 돌봄이 사라진다. 건강은 소홀해지고, 사회적 지위는 흔들리며, 가족의 중요한 욕구들은 무시된다. 건강·재정·도덕적 손상이 뒤따르지만, 이 모든 것이 이상을 위해 정당화된다. 자신의 이론을 따르지 않는 타인에 대한 개인적 관심은 완전히 사라진다.
 
이러한 상황에서 흔히 자녀들은 아버지를 냉혹한 폭군으로 여기는 반면, 외부 사람들은 그의 인간성을 칭송하는 모순적 상황이 벌어진다. 의식이 매우 비인격적임에도 불구하고—아니, 바로 그렇기 때문에—무의식의 감정들은 지극히 예민해져서 은밀한 편견을 만들어낸다. 예컨대, 자신의 이론에 대한 객관적 반론을 개인적 악의로 오해하거나, 타인의 주장을 약화하고자 그들의 자질을 의심하게 된다. 이는 결국 자신의 예민함을 보호하기 위한 방어기제일 뿐이다.
 
이러한 무의식적 예민함은 날카롭고 공격적인 말투로 드러난다. 오해와 곡해가 빈번하게 발생하며, 감정들은 열등한 기능처럼 뒤처져 따라오면서 원한을 품는 성향이 강해진다. 지적 목표를 향한 개인적 헌신이 아무리 대담하더라도, 감정은 의심이 많고 변덕스러우며 보수적인 태도를 보인다. 공식에서 벗어난 새로운 것은 무엇이든 무의식적 증오의 시선으로 판단된다.
 
19세기 중반, 한 저명한 인도주의 의사는 조수가 체온계를 사용했다는 이유만으로 해고 위협을 했다. 그의 신념은 ‘열은 오직 맥박으로만 측정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러한 사례는 무수히 많다. 감정이 강하게 억압될수록 사고는 더욱 부정적이고 은밀한 영향을 받는다. 보편적 인정을 받을 만한 본질적 가치를 지닌 지적 관점조차도 무의식의 사사로운 예민함 때문에 독선적이고 경직되어 버린다. 진리가 자연스럽게 작용하도록 두는 대신, 주체는 그것과 지나치게 동일시되어 마치 상처 입은 예민한 인형을 다루듯 한다.
 
그는 비판자를 깎아내리고자 개인적 험담을 퍼뜨리거나 부적절한 논거까지 동원한다. 진리를 반드시 무대 위에 올려야만 하는 것이다. 사람들은 마침내 그에게 중요한 것이 진리가 아닌 그것을 만든 개인이라는 점을 깨닫는다. 무의식적이고 사적인 감정들이 뒤섞이면서 지적 관점의 독단성은 특이한 변화를 겪는다. 이러한 변화들은 순수한 감정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무의식 속에서 억압된 감정이 녹아든 여러 무의식적 요인들이 혼합되어 나타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