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치료의 이해

Carl Gustav Jung

정신치료의 이해

1. 정신 치료의 다양성

1. 정신치료의 역사적 발전 (서론)

 정신치료는 지난 50년간 발전하여 독립적인 치료 분야로 자리잡았으며, 이 과정에서 다양한 견해와 해석이 생겨나고 분화되었다.
 
정신치료는 처음 생각했던 것처럼 단순하고 확실한 방법이 아닌, 변증법적 과정—즉, 두 사람 사이의 대화와 토론—임이 분명해졌다.
 
변증법은 본래 고대 그리스의 대화술에서 시작되었으며, 이후에는 새로운 합성을 이루는 과정을 의미하게 되었다.
 
인간은 하나의 정신체계이며, 다른 사람과 상호작용할 때 두 정신체계 간의 교류가 일어난다.
 
의사와 환자 사이의 정신치료 관계에 대한 이러한 현대적 관점은 초기의 단순한 견해와는 크게 다르다. 초기에는 모든 환자에게 획일적 방법을 적용하여 원하는 효과를 얻을 수 있다고 여겼다. 하지만 실제 임상 경험을 통해 시야가 확장되었고, 결국 경험적 자료가 다양한 해석의 여지를 가진다는 사실을 인정하게 되었다.
 

2. 다양한 정신치료 학파와 방법론

 정신치료에는 여러 학파가 존재한다. 리보와 베른하임의 프랑스식 암시 요법과 의지의 재교육, 바빈스키의 설득법, 뒤부아의 합리적 정신교정법, 프로이트의 성욕과 무의식에 기반한 정신분석, 아들러의 권력의지와 의식적 허구를 중심으로 한 교육적 방법, 슐츠의 자율적 훈련이 대표적이다.
 
각 방법은 독특한 심리학적 결과를 도출하며, 이들을 상호 비교하기는 매우 어렵다.
 
각 학파의 지지자들은 문제를 단순화하려는 과정에서 다른 이론들을 오류로 치부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객관적으로 보면, 이러한 이론과 방법들은 모두 나름의 타당성을 지닌다. 각 방법이 실제로 치료 효과를 보이고 있으며, 자신들의 이론적 전제를 뒷받침하는 폭넓은 심리학적 증거를 제시하기 때문이다.
 

3. 정신치료에서의 이율배반

 정신치료는 현대 물리학이 빛에 관해 서로 모순된 두 이론을 제시한 것과 유사한 상황에 놓여 있다. 물리학에서 이러한 모순을 극복 불가능한 것으로 보지 않듯이, 심리학의 다양한 관점들도 단순한 대립이나 비교 불가능한 주관적 견해로 치부할 수 없다. 이러한 과학적 모순은 연구 대상이 빛의 파동성과 입자성처럼 현재로서는 이율배반적으로만 이해될 수 있는 특성을 지녔다는 것을 보여줄 뿐이다.
 
정신은 빛보다 훨씬 더 복잡한 성질을 지니므로, 그 본질을 충분히 설명하기 위해서는 더 많은 이율배반이 필요하다. 이러한 기본적 이율배반 중 하나는 다음과 같다.
 
정신은 신체에 의존하고 신체는 정신에 의존한다.’
 
이 이율배반의 양측은 모두 명백한 증거를 가지고 있어서 객관적으로 어느 한쪽의 우위를 판단할 수 없다. 이러한 타당한 모순의 존재는 연구 대상이 연구자의 판단력에 중대한 도전을 제기함을 보여준다. 그러므로 우리는 잠정적이고 상대적으로 타당한 설명만을 제시할 수 있다.
 
즉, 이러한 설명은 특정 정신 체계와 관련된 연구 대상의 특성을 드러내는 범위 내에서만 타당성을 가지며, 이를 통해 변증법적 이해에 이르게 된다. 이는 정신적 영향이 두 정신체계 사이의 상호작용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정신 체계의 개별성은 무한히 다양하므로, 이에 대한 타당한 설명 역시 그만큼 다양한 형태로 나타난다.
 
만약 개성이 완전히 고유해서 모든 개인이 서로 전혀 다르다면, 심리학은 과학으로 존재할 수 없을 것이다. 이는 심리학이 해결할 수 없는 주관적 견해들의 혼돈에 머물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개성은 상대적이며 인간의 보편적 특성에 비해 부차적이므로, 보편타당한 설명과 과학적 검증이 가능하다. 다만 이러한 설명은 비교 가능하고 통계적으로 파악할 수 있는 공통된 정신 체계에만 적용되며, 개별적이고 고유한 특성에는 해당되지 않는다.
 
심리학에서의 두 번째 기본적 대극은 “개별적인 것은 보편적인 것 없이는 의미가 없고, 보편적인 것은 개별적인 것 없이는 의미가 없다“는 것이다.
 
주지하듯이 ‘보편적 코끼리’는 존재하지 않으며, 오직 개별적인 코끼리들만이 실재한다. 하지만 코끼리라는 보편적 개념과 그 불변하는 특성이 없다면, 개별 코끼리 역시 존재할 수 없을 것이다. 이러한 논리적 고찰이 우리의 주제와 동떨어져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이는 심리학적 경험에 대한 근본적인 성찰이며, 이를 통해 매우 중요한 실제적 결론을 이끌어낼 수 있다.
 

4. 정신치료자의 태도와 변증법적 접근

 정신치료자로서 내가 의사의 권위를 내세우며 환자의 개성을 완전히 이해한다고 주장하고 이를 설명하려 든다면, 이는 오히려 나의 한계를 드러내는 일이 될 것이다. 나는 내 앞에 있는 인격체를 전체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위치에 있지 않다. 나는 그의 인격 중에서 보편적이거나 적어도 상대적으로 보편적인 부분에 대해서만 타당한 설명을 할 수 있을 뿐이다. 모든 생명체는 개별적인 형태로 존재하기에, 나는 다른 사람의 개별성에 대해 오직 나의 개별성을 통해 발견한 것만을 말할 수 있다. 이러한 접근은 결국 다른 사람에게 부적절한 것을 강요하거나, 내가 스스로 그러한 암시에 빠질 위험을 초래할 수 있다.
 
따라서 개인의 정신치료를 할 때는 모든 권위와 영향력을 행사하려는 마음, 그리고 내가 더 잘 안다는 생각을 반드시 내려놓아야 한다. 나는 필연적으로 서로의 견해를 비교하는 변증법적 방법을 택해야 한다.
 
이는 환자가 나의 전제에 구속되지 않은 채 자신의 견해를 온전히 표현할 기회를 가질 때 비로소 가능해진다. 이러한 표현을 통해 환자의 정신 체계는 나의 정신 체계와 연결되고, 내 고유의 정신 체계 속에서 특정한 작용이 일어난다. 이러한 작용이야말로 내가 개인적 관점에서 정당하게 환자에게 제시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이다.
 

이와 같은 근본적인 접근은 정신치료자에게 매우 특별한 태도를 요구하며, 이는 모든 개인 치료에서 필수불가결하다. 이것만이 과학적으로 책임질 수 있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태도를 벗어난 모든 시도는 단순한 암시요법에 지나지 않는다.

5. 암시요법과 집단치료

암시요법은 타인의 개성을 완전히 이해하고 해석할 수 있다고 주장하며, 이를 치료에 적용하는 모든 방법을 의미한다. 여기에는 기술적 접근을 중시하는 모든 방법이 포함된다.
 
이는 모든 환자가 본질적으로 동일하다는 전제를 바탕으로 한다. 개인의 고유한 특성을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 이러한 전제하에서는 암시적 방법, 기술적 방법, 이론적 가정을 어떤 형태로든 적용할 수 있으며, 실제로 상당한 치료 효과를 보이기도 한다.
 
크리스천 사이언스(1870 미국, 신앙의 힘으로 병을 고침), 정신 치유(Mental Healing), 사상 교정(Thought cure), 치료 교육 등 의학적·종교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다양한 기법과 수많은 사조가 여기에 속한다.
 
정치 운동도 일종의 대규모 정신치료로 볼 수 있다. 전쟁은 많은 강박신경증 환자들을 치유했으며, 성지나 기적의 장소들은 오래전부터 신경증을 해소하는 역할을 해왔다. 크고 작은 민중 운동 역시 개인의 정신 건강에 치유적 영향을 미친다.
 
이러한 현상을 가장 명확하고 간단하게 설명하는 것이 원시인의 관념, 즉 마나설(Mana說)이다.
 
마나설(Mana說)
 
마나는 보편적으로 퍼져 있는 치유의 힘으로, 사람과 동식물을 풍요롭게 하며 추장이나 주술사를 마술적으로 강화한다.
 
마나는 비상한 영향력을 지닌 것, 특히 깊은 인상을 주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원시적 수준에서는 인상적인 모든 것이 곧 ‘의(醫, Medizin)’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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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정신치료의 기본 원칙

1. 군중심리와 집단치료의 한계

 “백 명의 수재가 모이면 하나의 얼간이가 된다”는 말이 있다. 덕망과 재능은 본질적으로 개인의 특질이지 대중의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무리를 지으면 군중심리에 휩쓸려 맹목적인 ‘떼’가 되거나, 폭도심리에 빠져 분별없는 잔인성이나 히스테리적 감상주의를 보이기 쉽다.
 
대중은 원시적인 특성을 지니고 있으므로 기술적인 방법으로 다루어야 한다. ‘기술적으로 타당한 방법’, 즉 보편적으로 효과가 있다고 인정되고 믿어지는 방법이 아닌 것으로 집단을 치료하려는 시도는 기술상의 오류다. (최면술, 동물자기磁氣설?) ……
 
치료자의 방법에 대한 믿음이 결정적이다. 환자를 위한 노력과 헌신이 중요하지만, 그 한계는 개별성과 보편성 사이의 이율배반에 의해 정해진다.
 
이러한 이율배반은 철학적 기준일 뿐만 아니라 심리학적 기준이기도 하다. 많은 사람들이 단순히 집단적일 뿐 아니라, 집단적 존재가 되고자 하는 특별한 욕망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현대 사회의 교육 경향과도 일치한다. 이러한 교육은 개성을 무법성과 동일시하여 모든 개인적인 것을 열등한 것으로 평가하고 억압한다. 이러한 단계에서 나타나는 신경증은 심리적 병독으로서 개인적 내용과 경향을 드러내게 된다.
 

2. 정신신경증의 두 유형

 개성을 보편성과 비교할 때 의미가 없다는 논리로 개성을 과대평가하는 경우도 있다. 심리학적 관점에서 정신신경증은 크게 두 유형으로 나눌 수 있다.
 
첫째는 개성이 충분히 발달하지 못한 집단적 성격의 사람들이며, 둘째는 집단 적응력이 부족한 개인주의자들이다. 이에 따라 치료 방식도 달라진다. 신경증적 개인주의자들은 자신의 내면에 있는 집단적 인간성을 인정하고 집단 적응의 필요성을 받아들여야만 건강을 회복할 수 있다. 따라서 이들을 집단적으로 타당한 진실의 수준으로 이끄는 것이 적절한 접근법이다.
 
한편 정신치료자들은 임상 경험을 통해 겉으로는 집단에 잘 적응한 것처럼 보이는 환자들도 만난다. 이들은 건강한 삶을 위해 이성적으로 필요한 모든 것을 갖추고 있으면서도 병을 앓고 있다. 이런 사람들을 정상이라는 기준에 맞추려 하는 것은 심각한 실수다. 그럼에도 우리는 자주 이런 실수를 저지르며, 그 결과 그들 안에 있는 발전 가능한 개성을 모두 억누르게 된다.
 

3. 변증법적 치료방식의 발전

 개인적인 것은 일회적이며 예측이나 해석이 불가능하므로, 치료자는 자신의 모든 가정과 기법을 내려놓아야 한다. 모든 방법론적 접근을 피하고 순수한 변증법적 과정에만 집중해야 하는 것이다. 이는 이전의 정신치료 이론과 실제를 발전시키는 것이 아니라, 가능한 한 편견 없는 태도를 갖기 위해 기존의 것들을 완전히 포기하는 것을 의미한다.
 
다시 말해, 치료자는 이제 행동의 주체가 아닌 개인의 발달 과정을 함께 체험하는 자(Miterlebender)가 되어야 한다.
 
이러한 깨달음은 하늘에서 갑자기 떨어진 선물처럼 저절로 얻어진 것이 아니며, 나름의 역사적 배경이 있다. 분석가 자신도 분석을 받아야 한다고 처음 제안한 사람은 내가 맞다. 그러나 분석가 역시 콤플렉스를 지니고 있어서 하나 혹은 여러 맹점과 그에 따른 편견을 가질 수 있다는 귀중한 통찰은 주로 프로이트의 공헌이었다.
 
정신치료자는 단순한 권위만으로 환자를 해석하거나 인도할 수 없으며, 자신의 고유한 인격을 무시해서도 안 된다. 임상 경험은 치료자의 특이한 태도나 성향이 오히려 환자의 회복을 방해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치료자가 이를 스스로 인정하지 못하고 명확한 통찰이 부족하다면, 환자의 의식화 과정이 저해되어 심각한 손실이 초래된다.
 
분석가가 반드시 분석을 받아야 한다는 요구는 변증법적 방식이라는 개념의 정점을 이룬다. 이 방식에서 치료자는 질문하고 대답하는 자로서 다른 정신 체계와 관계를 맺는다. 그는 더 이상 우월한 위치에 있는 박식한 전문가나 재판관, 조언자가 아니라 환자와 함께 체험하는 자로서 변증법적 과정의 한 부분이 된다.
 
변증법적 방식의 또 다른 근원은 상징적 내용이 다양한 해석을 허용한다는 점에 있다. 질버러(Herbert Silberer)는 이를 정신분석적 해석과 영묘(靈妙, anagogische)한 해석으로 구분했으며, 나는 이를 분석적-환원적 해석과 합성적-해석학적 해석으로 분류했다.
 

4. 치료적 해석의 이중성

 이를 설명하기 위해 상징적 내용이 풍부한 원천인 부모상(父母像)에 대한 유아적 고착을 예로 들어보겠다.
 
분석적-환원적 견해는 관심(리비도)이 퇴행하여 유아기의 잔재로 되돌아가 거기에 고착된다고 주장한다. 한편 합성적 또는 영묘한 견해는 발전 가능성을 지닌 인격의 일부가 중요하며, 이것이 유아적 상태—즉 모태 속과 같은 상태—에 있다고 본다. 이 두 해석은 모두 타당할 수 있으며, 실제로는 서로 다르지 않다고 볼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가 현상을 퇴행적으로 해석하는지 전행적(前行的)으로 해석하는지에 따라 실제 치료에서는 큰 차이가 나타난다. 둘 중 하나를 명확히 결정하기는 매우 어려우며, 이러한 의문에 직면할 때 우리는 종종 판단을 내리기 어렵다.
 
이와 같이 본질적 내용이 다양하게 해석될 수 있다는 사실은 이론이나 기법을 무비판적으로 적용하는 것의 문제점을 분명히 보여준다. 이는 변증법적 치료 방식을 암시요법과 비교 연구하는 데 기여했으며, 치료법의 정교함과 관계없이 모든 경우에 해당한다.
 

5. 치료효과의 핵심요소

프로이트 이후 정신치료의 문제들이 분화되고 심화되면서, 의사의 인격이 의사-환자 관계의 핵심 요소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이는 사실 이전의 최면술이나 베른하임의 암시요법에서도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었다.
 
즉, 치료 효과는 첫째로 의사와 환자 사이의 치료적 상호 관계(Rapport, 프로이트의 용어로는 전이轉移)에 의해 좌우되며,
 
둘째로 의사의 인격에서 비롯되는 설득력과 관찰력에 의해 결정된다. 의사와 환자 사이에는 두 정신 체계가 상호 작용하므로, 정신치료의 본질을 깊이 들여다보면 개성의 중요성을 부정할 수 없다. 이를 통해 의사와 환자의 관계는 변증법적 과정이어야 한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이는 과거의 정신치료와 비교할 때 획기적인 변화를 의미한다. 그러나 이것이 기존의 치료 방법들이 쓸모없거나 부적절하다는 뜻은 아니다. 오히려 정신의 본질을 깊이 연구할수록 인간의 본질이 다층적이고 다양하다는 사실이 분명해지며, 이러한 정신적 다양성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더욱 다양한 관점과 방법이 필요하다는 확신이 커진다.
 
단순한 정신 구조를 지닌 환자들에게 복잡한 충동 체계 분석이나 섬세한 심리학적 대화를 적용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반면 복잡하고 정신적으로 높은 수준의 사람들에게는 단순한 조언이나 암시, 또는 특정 체계로의 귀의만으로는 진전을 이룰 수 없다. 이러한 경우 의사가 할 수 있는 최선은 자신의 인격이 환자에게 충분한 길잡이가 될 것이라 신뢰하는 것뿐이다. 더불어 치료자는 환자의 지능과 감수성, 인격의 깊이와 폭이 때로는 자신의 것을 뛰어넘을 수 있다는 가능성을 진지하게 고려해야 한다.
 
그러나 모든 경우에서 변증법적 과정의 최고 법칙은 다음과 같다: 환자의 개성은 의사의 것과 동등한 가치와 존재 이유를 지니며, 환자에게서 일어나는 모든 발전은 그들이 스스로 수정하지 않는 한 타당한 것으로 받아들여야 한다.